
* 카이바가 어린 시절로 회귀하되 현재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설정
** 회귀한 것도 모자라 이집트 시절로 순간이동했다는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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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의 사고는 도미노시티를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놨다.
KC 얼굴이자 사장, 그리고 도미노시티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카이바 세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차량을 거의 반쪽 낸 대형 사고인 것도 이야깃거리였지만 KC 입장에서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사고현장에서 카이바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으음..."
작열하는 태양의 뜨거움 때문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뜨거움과 동시에 상쾌하기까지 했다.
[어어? 눈 떴다!]
[얘는 뭐야?]
[신기하게 생겼어! 얘가 입고 있는 옷들은 뭘까?]
주변에서 시끄러운 외국어 소리가 왕왕 울려 카이바는 골이 다 아팠다.
"조용히 좀 해...응?"
카이바의 눈 앞에 일본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들판으로 보이는 이 곳에 왠 피부가 까무잡잡한 어린이들이 저를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마냥 보고 있었다.
"뭐, 뭐야? 니들은 뭐야?"
[우와! 얘 말도 할 줄 알아!]
[우리랑 똑같이 생겼는데 그럼 말도 할 줄 알겠지.]
[아냐! 저번에 봤던 애는 말 못했는걸?!]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카이바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려가며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도저히 이 곳이 어디인지 감이 안 왔다.
그 순간, 카이바의 눈에 뭔가가 뙇 들어왔다.
"저건...!"
저건 피라미드다.
이게 꿈이건 말건 저 형상은 분명 피라미드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 앗!"
그 순간, 아이들이 카이바에게 달려들더니 일제히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천으로 포박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인데도 힘이 엄청나 카이바는 순간 당황했다.
"무, 무슨 짓이야!"
[가만히 있어! 너 노예시장으로 데려가면 비싸게 받을 수 있을거 같아!]
[헹! 피부가 하얘서 다른 노예 반값이나 될 거 같은데.]
아이들이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이해되지 않은 상태에서 카이바는 결국 그들 손에 끌려갔다.
사람들이 많은 도심에 들어온 순간 카이바는 아까의 피라미드가 헛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가 봐도 자신을 둘러싼 풍경과 사람들은 교과서에서나 봤던 전형적인 고대 이집트를 그대로 묘사해놓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여어! 꼬맹이들아, 오늘은 누굴 데려왔냐?]
[몰라요.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요. 근데 얘는 얼마나 줄 수 있어요?]
[어디 보자.]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카이바의 하관을 콱 잡았다.
턱이 으스러질 것 같은 아픔에 카이바가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찡그리자 남자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보리 두 자루.]
[에엑! 겨우 그거예요?! 너무해!]
[이봐, 큰거로 줄거. 저 대형 자루로 주면 될거 아니야?]
남자와 아이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카이바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포박당한 자신, 자신을 더럽게 쳐다보던 남자, 그 남자에게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싸우는 아이들...
이건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기려는 행위였다!
"어림없지!"
카이바는 몸을 일으켜 기습적으로 한 아이를 밀치고 달아났다.
뒤에서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게 들렸지만 지금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카이바는 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죽을 힘을 달렸다.
모퉁이를 돌아 정신없이 달렸지만 이내 막다른 길이 나왔고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아이들과 남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게 도망을 가?!]
[교육이 아주 세게 필요할 녀석이군. 넌 잡히면 나한테 죽-]
[멈춰라!]
바로 그 때, 앳되지만 위엄있는 목소리가 길을 울렸고 카이바와 아이들 무리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했다.
순간, 카이바의 눈이 커졌다.
"유우기?"
너무도 확 바뀐 상황에 카이바는 이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왠 어린애들에게 잡혀 남자에게 끌려가 노예로 팔릴 뻔 해 도망쳤더니 유우기가 나타나 구해주고 이제는 그의 손에 이끌려 왕궁으로 오게 되었다.
유우기 역시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는데 카이바는 어렴풋 유우기 안에는 또다른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이 파라오라고 들은 것을 기억했다.
그럼 이 녀석이...
[마하드, 나 왔어. 목욕물 좀 준비해줄래?]
[알겠습니다, 왕자님. 그런데 뒤에 저 아이는...]
[아, 시장에 순찰하러 갔다가 주웠어. 재밌는 말을 하더라고. 그래서 같이 놀려고 데려왔어.]
[그러시군요. 그럼 친구분과 목욕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마하드가 사라지자 유우기는 카이바를 이끌어 휘장 안에 잔뜩 쌓여진 방석 쪽으로 데리고 갔다.
카이바를 앉히자마자 유우기의 입이 터지기 시작했다.
[이름이 뭐야? 어디서 왔어? 어쩌다가 그런 상황이 된거야?]
"무슨 소리야..."
[흠, 역시 의사소통이 안되는건 불편해. 내일 너한테 글 가르쳐줄 사람을 붙여줄께.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내가 꼭 찾아줄께!]
유우기가 싱긋 웃었지만 그가 하는 말이 뭔지 하나도 못 알아들은 카이바는 그저 얼굴만 찌푸릴 뿐이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유우기가 키는 좀 작긴 했지만 어리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제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은 아무리 많이 봐줘봐야 10살이 아닌가?
그리고 저 역시 손이 작아지고 목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이제 들으니 어릴 적 목소리와 비슷했다.
이거 무슨 회귀물이야?
혼란스러운 상황에 카이바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의사 불러줄까?]
"시끄러우니까 종알거리지 좀 마! 떨어져!"
카이바가 유우기를 확 밀쳤고 그 바람에 유우기가 방석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별로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장면을 다른 사람이 봤다는 것이었다.
[너 이놈!]
카이바는 왠 중년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순간 뺨에서 불이 났다.
그 자가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친 것이었다.
[어디서 출처도 알 수 없는 놈을 내 아들이 데려왔다 해서 와봤더니 이런 불경한 짓을 해!]
[아버지! 저 괜찮아요. 안 다쳤어요.]
[아템. 너는 미래의 파라오가 될 아이다. 이렇게 함부로 아무나 데려오면 안되는 것이다.]
[제가 잘 가르쳐줄께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께요.]
유우기는, 아니 아템은 그렇게 제 아버지인 아크나무카논에게 빌고 또 빌었다.
아들의 고집을 꺾지 못한 아버지가 결국 카이바를 한번 노려보는 것으로 끝나자 아템은 또 누가 올세라 카이바를 데리고 욕탕으로 갔다.
제 앞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아템을 본 카이바는 기겁했다.
"뭐, 뭐하는거야!"
[목욕할거야. 너도 벗어.]
"너 내 몸에 손대지-으왓!"
[됐으니까 얼른 벗어!]
카이바가 저항할 새도 없이 아템이 그의 옷도 훌렁 벗기더니 이내 욕탕으로 바로 끌고 들어갔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지 물은 상당히 차가워 카이바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아템은 손에 물을 받아 카이바의 머리에 뿌렸다.
"뭐 하는 짓이야!"
[아까 머리 아팠던거 아니야? 이러면 훨씬 나아져.]
그러면서 아템은 몇 번을 더 카이바의 몸과 머리에 물을 뿌려주었다.
차가운 물에 적응되자 이내 향기로운 냄새가 몸을 녹진하게 해주었다.
아마 왕자님이 목욕할거라 그런지 향유라도 뿌린 듯했다.
'엄청 고급스럽네...'
고자부로 밑에서 배는 곯지 않았지만 이런 섬세한 보살핌은 받지 못했음이 또 떠오른 카이바는 불퉁해졌다.
몸이 어려져서 마음도 어려진건가?
무릎을 모으고 가만히 앉아있는 카이바를 보던 아템은 다시 재잘거렸다.
[난 아템이야. 넌 이름이 뭐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으니까 제발 입 좀 다물어."
[그게 다 이름이야? 아닌거같은데...아!]
아템은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다.
[아템.]
"..."
[아템.]
자신을 아템이라고 하는 아템의 손가락이 카이바를 향했다.
제 이름을 말해달라는 거구나.
만약 이게 회귀물이나 타임슬립 같은게 맞다면 저는 아템을 알아도 아템은 저를 모르겠구나 싶었다.
"...카이바."
[카이바? 이름이 카이바구나. 신기한 이름이야. 멋져.]
아템이 활짝 웃었다.
카이바는 그 표정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자신이 하는 말 어떤 것도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 이름 하나에 저렇게 행복하는 녀석이라니...
제가 아는 아템은 늘 과거의 무언가를 되묻고 오컬트 같은 말만 해서 짜증났는데 눈 앞의 아템은 영락없는 어린 소년이었다.
[카이바. 내가 꼭 부모님 찾아줄께. 그때까지 같이 있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템이 하는 말은 분명 자길 도와주겠다 이런 거일거다.
그 때의 아템이나 지금의 아템이나 그 녀석은 상냥하니까.
"...응."
목욕을 마친 카이바는 아템의 손에 이끌려 결국 한 침대에 눕게 되었다.
제가 무슨 애착인형이라도 되는 냥 손을 꼭 붙잡고 자는 아템은 낯설었다.
하지만 그 손에서 온기가 느껴져 왠지 모를 편안함도 주었다.
'이제부터 어쩌지...일단 이 녀석과 같이 있어야겠지?'
카이바는 처음으로 될대로 되라 라는 생각을 했다.
아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 카이바의 눈꺼풀도 점점 무거워졌다.
"잘 자, 아템."
그 때의 아템을 경험한 카이바가 현세로 돌아오는 것은 멀지 않은 미래였다.